2007년 08월 18일
Where'd you go?
올해 2월. 이게 마지막이라고 나 자신에게 우격다짐 하듯 마음을 다잡고, 홀홀단신 제주도의 ICC 컨벤션 홀로 떠났다. 시시때때로 내 일거수일투족이 가족들에게 큰 폐가 된다는 걸 느끼면서도, 굳이 '한류엑스포'라는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다. 정말 이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녀온 후의 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보아의 팬이라면 혹시 알지도 모를 그 한류 엑스포 행사는 몇 달 전부터 기사가 떴는데, 당연히 뼈라도 물고 싶은 팬들에게 간만의 소식은 환희와 설렘 그 자체였다. 사실 그때 나는 보아의 공연에 굶주린 팬이었다기보다, 어떤 진위여부를 확실히 하고자 지나치게 집착했던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 먹기란 쉬웠지만, 우리 가족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수 보아를 반가워 하지 않았다. 부모 몰래 제주도로 빠지기에도 당시의 내겐 무리가 있었다. 장녀인 나는, 굳이 내 캐릭터를 찾자면,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나오는 유정처럼 종종 스스로의 분에 못 이겨 집안의 행복한 무드에 쉬이 못 질을 하곤 했다. 또한 황미나 '레드 문'의 아즐라처럼, 신경은 또 얼마나 바늘 끝처럼 예민해서, 곧잘 상처받고 곧잘 상처를 주었다. 그런 내가 보아의 팬이 되었으니 가족들 눈에 얼마나 아니꼽고 눈엣 가시 같았을까?
어쨌건, 여기서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깊이깊이 꺼내어 거북해지고 싶지 않다. 글 전체로 봤을때 그다지 중요한 부분도 아니니 적당한 묘사로 넘어가겠다.
그때는 재작년의 불타는 순정심이 이미 백 만년전에 식어버린 싱거운 상태였고, 그러니 보아에게 새롭게 덧붙히는 기대라거나, 조바심이라거나, 식어버린 마음에 지필 더 이상의 땔나무 따위도 없었다. 의무가 아닌 생활이 되어 일상에 침투한 팬질에 조금씩 둔감해지는 날들이었다. 가족들과의 불화도 잦았다. 나는 그 불화가 만들어 낸, 예의 그 대중 기피증이 또 재발해서 방안에 콕 박혀 지내는 폐인같은 생활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으리라. 인간은 내부에서 빚은 갈등을 가끔 외적인 도태로 표출하기도 하니까. 진정으로 나는 더 이상 그런게 싫었고, 내 마음이 진짠지 아닌지, 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모든 것을 피부로 똑똑히 느끼고 싶었다.
'MADE IN TWENTY' 라는 타이틀의 그 공연 티켓을 여차저차하여 구했다.
문제는 제주도까지 나를 운송해줄 교통수단에 대한 자격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국내의 유명한 항공사 세개 사이트를 하루나절 들락날락하며, 잔여석을 확인하고 수차례 문의전화를 했다. 비수기였으나 주말이라 내가 원하는 시간엔 남는 자리가 없었다. 그 일주일은 '만석'이라고 뜬 표시에 수도 없이 원망과 좌절을 반복해야 했다.
제주도 공연이 아슬아슬한 몇 일만을 남겨둔 어느 이른 아침, 모 항공사 사이트에서 공석을 확인한 순간, 빠르게 커서를 움직여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 뒤로 문의전화를 해둔 탓에 스탠바이에 올랐던 내 번호로 몇번씩 공석을 알리는 전화가 와, 이미 자리를 얻은 나는 몇번이고 거절했지만 그때마다 날아갈 듯 기뻤다.
제주도 결행 당일, 하루 전. 당시 내가 좋아하는 보아의 cf가 있었는데 사진작가 조세현 버젼의 '올림푸스 뮤'였다. 혹시 그 cf의 배경음을 아시는가? Fort Minor의 'Where'd you go' 라는 곡이다. 이곡을 그 cf의 노래라는 인식을 처음 했을 때, 나는 엠피에 넣고 맨날 흥얼거리고 다닐만큼 푹 빠져버렸다. 좋아하는 광고에 삽입된 곡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딘가 마치 가출을 한 비행 청소년을 선도하는 공익 캠페인의 배경음으로 쓰여도 좋을 '가사'가 내 머리에 지진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전주의 피아노 반주음 비슷한 선율이 흐르고, 곧 여자 보컬이 체념의 메아리 같기도 한 슬픈 몇 절을 읊으면 본격적으로 강한 비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포트 마이너의 독설같은 긴 독백이 랩이라는 유쾌한 리듬으로 탈바꿈하여 어딨는지 모를 그리움을 대상을 원망하며 추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그 비탄과 원망 가득한 애수의 랩 뒤에는 역시 전주의 피아노 선율같은 반주와, 심장 두드리는 강한 비트가 적당히 샤바샤바 되어 더욱 풍성한 그리움을 빚어낸다. 라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운송의 수단에 몸만 실어 무사히 제주 컨벤션 홀에 도착할 수 있었고 타이밍을 못 맞춰서 아침 한끼먹곤 통 밥 구경을 못 했던 씁쓸한 그날의 기억을 제외한다면 그럭저럭 공연은 재밌었다. 말했지만 나는 보아를 몇번 본 전례가 있어서 새삼 1시간 짜리 콘서트에서의 만남이 두렵다거나...한 건 아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하늘을 보니 껌껌했다. 불현듯 그때 나는 내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을 간과한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깜박이며 상공을 나는 기체 안에서 문득 아직 부산 땅을 밟고 이 깜박이는 기체를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을 무능한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이번의 수확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다. 과연 그것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행은 안목의 시야를 넓혀주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은연의 고민이 언제나 수반되는 법이다.
무사귀환을 자축하며 벌써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포트 마이너의 'Where'd you go'의 가사를 알고 느낀 공통의 감상.
다름아닌 내 얘기였다.
'그래요, 사실 나는 이런 엿같은 기분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래요.'
'당신이 곁에 없는 동안 무기력함을 느꼈어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여기에 있지 않을 거고, 당신은 노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과거에 우리는 둘이서 뭘 했고 뭘 했고 뭘 했는데, 영원할거 같았던 당신이 떠나버려서 나는 죽고만 싶다, 전화를 걸고 싶어도 막상 아무런 말 못하는 내가 너무너무 싫지만, 당신이 돌아오면 내 맘은 여기서 변치 않았노라고 당신에게 말할 거야.. 라는 부분은 대변인의 피크였다.
어쩌면 보아가 멀리멀리 가버린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지나치게 여러곳을 순회한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외부의 장애물은 간단히 뛰어넘어 그대로 달리면 되는 일이었지만 내부의 도태를 뛰어넘기란 쉬운게 아니었다.
한층 높은 곳에서 혼자 업그레이드 되어 나를 놀려주는 보아가 미운거 없이 그저 반갑고 좋았다. 말마따나, 보아의 디너 쇼에 우리 조카들을 끌고 갈 때까지 내가 살아서, 또 그때처럼 그 반갑고 좋음을 만끽하고 오면 그게 팬질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뒤숭숭스러운 마음을 회복하는 일은 이제 포기하고 나는 내가 좋은 일을 내 뜻대로 해볼 생각이다.
포트 마이너의 랩이 끝나지 않는 이상, 뭐 문제 없을 듯.
이렇게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다가, 나중에 보아가 깜짝 하고 그때처럼 나를 또 놀래켜 주면, 그때 나는 '한참 기다렸잖아! 계속 여기 있을줄 알았는데 어디에 갔었어?' 하고 시침을 뚝 떼며 한껏 원망스런 눈길로 쳐다봐야지.
그럼 당황하며 웃는 보아더러, 왔으니까 이제 노래해~ 말하고 웃을테다.
한동안은 2월의 추억을 안고, 포트 마이너의 집 나간 불효자식 기다림 같은 랩을 곱씹으며.
보아의 팬이라면 혹시 알지도 모를 그 한류 엑스포 행사는 몇 달 전부터 기사가 떴는데, 당연히 뼈라도 물고 싶은 팬들에게 간만의 소식은 환희와 설렘 그 자체였다. 사실 그때 나는 보아의 공연에 굶주린 팬이었다기보다, 어떤 진위여부를 확실히 하고자 지나치게 집착했던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 먹기란 쉬웠지만, 우리 가족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가수 보아를 반가워 하지 않았다. 부모 몰래 제주도로 빠지기에도 당시의 내겐 무리가 있었다. 장녀인 나는, 굳이 내 캐릭터를 찾자면,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나오는 유정처럼 종종 스스로의 분에 못 이겨 집안의 행복한 무드에 쉬이 못 질을 하곤 했다. 또한 황미나 '레드 문'의 아즐라처럼, 신경은 또 얼마나 바늘 끝처럼 예민해서, 곧잘 상처받고 곧잘 상처를 주었다. 그런 내가 보아의 팬이 되었으니 가족들 눈에 얼마나 아니꼽고 눈엣 가시 같았을까?
어쨌건, 여기서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깊이깊이 꺼내어 거북해지고 싶지 않다. 글 전체로 봤을때 그다지 중요한 부분도 아니니 적당한 묘사로 넘어가겠다.
그때는 재작년의 불타는 순정심이 이미 백 만년전에 식어버린 싱거운 상태였고, 그러니 보아에게 새롭게 덧붙히는 기대라거나, 조바심이라거나, 식어버린 마음에 지필 더 이상의 땔나무 따위도 없었다. 의무가 아닌 생활이 되어 일상에 침투한 팬질에 조금씩 둔감해지는 날들이었다. 가족들과의 불화도 잦았다. 나는 그 불화가 만들어 낸, 예의 그 대중 기피증이 또 재발해서 방안에 콕 박혀 지내는 폐인같은 생활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였으리라. 인간은 내부에서 빚은 갈등을 가끔 외적인 도태로 표출하기도 하니까. 진정으로 나는 더 이상 그런게 싫었고, 내 마음이 진짠지 아닌지, 또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모든 것을 피부로 똑똑히 느끼고 싶었다.
'MADE IN TWENTY' 라는 타이틀의 그 공연 티켓을 여차저차하여 구했다.
문제는 제주도까지 나를 운송해줄 교통수단에 대한 자격권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국내의 유명한 항공사 세개 사이트를 하루나절 들락날락하며, 잔여석을 확인하고 수차례 문의전화를 했다. 비수기였으나 주말이라 내가 원하는 시간엔 남는 자리가 없었다. 그 일주일은 '만석'이라고 뜬 표시에 수도 없이 원망과 좌절을 반복해야 했다.
제주도 공연이 아슬아슬한 몇 일만을 남겨둔 어느 이른 아침, 모 항공사 사이트에서 공석을 확인한 순간, 빠르게 커서를 움직여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 뒤로 문의전화를 해둔 탓에 스탠바이에 올랐던 내 번호로 몇번씩 공석을 알리는 전화가 와, 이미 자리를 얻은 나는 몇번이고 거절했지만 그때마다 날아갈 듯 기뻤다.
제주도 결행 당일, 하루 전. 당시 내가 좋아하는 보아의 cf가 있었는데 사진작가 조세현 버젼의 '올림푸스 뮤'였다. 혹시 그 cf의 배경음을 아시는가? Fort Minor의 'Where'd you go' 라는 곡이다. 이곡을 그 cf의 노래라는 인식을 처음 했을 때, 나는 엠피에 넣고 맨날 흥얼거리고 다닐만큼 푹 빠져버렸다. 좋아하는 광고에 삽입된 곡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딘가 마치 가출을 한 비행 청소년을 선도하는 공익 캠페인의 배경음으로 쓰여도 좋을 '가사'가 내 머리에 지진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전주의 피아노 반주음 비슷한 선율이 흐르고, 곧 여자 보컬이 체념의 메아리 같기도 한 슬픈 몇 절을 읊으면 본격적으로 강한 비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포트 마이너의 독설같은 긴 독백이 랩이라는 유쾌한 리듬으로 탈바꿈하여 어딨는지 모를 그리움을 대상을 원망하며 추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그 비탄과 원망 가득한 애수의 랩 뒤에는 역시 전주의 피아노 선율같은 반주와, 심장 두드리는 강한 비트가 적당히 샤바샤바 되어 더욱 풍성한 그리움을 빚어낸다. 라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운송의 수단에 몸만 실어 무사히 제주 컨벤션 홀에 도착할 수 있었고 타이밍을 못 맞춰서 아침 한끼먹곤 통 밥 구경을 못 했던 씁쓸한 그날의 기억을 제외한다면 그럭저럭 공연은 재밌었다. 말했지만 나는 보아를 몇번 본 전례가 있어서 새삼 1시간 짜리 콘서트에서의 만남이 두렵다거나...한 건 아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하늘을 보니 껌껌했다. 불현듯 그때 나는 내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을 간과한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깜박이며 상공을 나는 기체 안에서 문득 아직 부산 땅을 밟고 이 깜박이는 기체를 부러운 눈길로 보고 있을 무능한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이번의 수확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다. 과연 그것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행은 안목의 시야를 넓혀주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은연의 고민이 언제나 수반되는 법이다.
무사귀환을 자축하며 벌써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포트 마이너의 'Where'd you go'의 가사를 알고 느낀 공통의 감상.
다름아닌 내 얘기였다.
'그래요, 사실 나는 이런 엿같은 기분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래요.'
'당신이 곁에 없는 동안 무기력함을 느꼈어요.'
'당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여기에 있지 않을 거고, 당신은 노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과거에 우리는 둘이서 뭘 했고 뭘 했고 뭘 했는데, 영원할거 같았던 당신이 떠나버려서 나는 죽고만 싶다, 전화를 걸고 싶어도 막상 아무런 말 못하는 내가 너무너무 싫지만, 당신이 돌아오면 내 맘은 여기서 변치 않았노라고 당신에게 말할 거야.. 라는 부분은 대변인의 피크였다.
어쩌면 보아가 멀리멀리 가버린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지나치게 여러곳을 순회한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외부의 장애물은 간단히 뛰어넘어 그대로 달리면 되는 일이었지만 내부의 도태를 뛰어넘기란 쉬운게 아니었다.
한층 높은 곳에서 혼자 업그레이드 되어 나를 놀려주는 보아가 미운거 없이 그저 반갑고 좋았다. 말마따나, 보아의 디너 쇼에 우리 조카들을 끌고 갈 때까지 내가 살아서, 또 그때처럼 그 반갑고 좋음을 만끽하고 오면 그게 팬질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뒤숭숭스러운 마음을 회복하는 일은 이제 포기하고 나는 내가 좋은 일을 내 뜻대로 해볼 생각이다.
포트 마이너의 랩이 끝나지 않는 이상, 뭐 문제 없을 듯.
이렇게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다가, 나중에 보아가 깜짝 하고 그때처럼 나를 또 놀래켜 주면, 그때 나는 '한참 기다렸잖아! 계속 여기 있을줄 알았는데 어디에 갔었어?' 하고 시침을 뚝 떼며 한껏 원망스런 눈길로 쳐다봐야지.
그럼 당황하며 웃는 보아더러, 왔으니까 이제 노래해~ 말하고 웃을테다.
한동안은 2월의 추억을 안고, 포트 마이너의 집 나간 불효자식 기다림 같은 랩을 곱씹으며.
# by | 2007/08/18 11:02 | B | 트랙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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